코리아 엑스포제, 한일 ‘위안부’합의에 대한 6개의 다른 시각 묘사 기사

기사입력 2016.02.10 08:36 조회수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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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엑스포제, 한일 ‘위안부’합의에 대한 6개의 다른 시각 묘사
– 한일합의는 협상의 기본도 충족 못 시킨 편파적 비밀협약으로 실패작
– 소녀상 지킴이 학생들과 활동가 외에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 줄 또 누구 없소?

지난 2일 코리아 엑스포제에 12월28일 한일 ‘위안부’합의를 진단하는 홍숙정 작가의 그래픽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한일 간 “위안부 합의”: 6개의 다른 시각> 이며, 왜 한일합의가 실패작인가를 다루고 있다.

홍작가는 “한국에 생존해 있는 46명의 피해자 중 누구에게도 이번 합의안의 조건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한 문제이며, “‘위안부’ 합의안이 생존자들의 요구와 그들의 24년에 걸친 캠페인, 그리고 해외 인권 단체들의 권고를 철저히 무시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한다고 꼭 민족주의자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홍 작가는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이 실제로 얻은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공식적 미사여구와 현실의 간격은 더욱더 뚜렷하다”는 것을 협상, 굴복, 비밀, 데자뷰, 블랙홀, 연기 및 거울테이블이라는 여섯 가지 테이블로 묘사하며, 한일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협상테이블’에서는 합의 과정에서 생존자들이 배제된 사실을 비판하며, ‘굴복 테이블’에서는 일본 총리의 공식사죄나 피해자 보상도 없는 일본 주장에 항복한 합의라고 분석한다.

 ‘비밀 테이블’에서는 논쟁과 공개토론의 기회도 주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데자뷰 테이블’에서는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1965년 한일조약에서 사용했던 것처럼 미래의 어떤 이의 제기도 막는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단어사용에 대해 비판한다.

‘블랙홀 테이블’에서는 ‘군 당국’만이 연루되었음을 암시할 뿐 역사적인 책임 소재와 관련된 모든 다른 요구 사항들은 완전히 무시된 합의라고 평가하며, ‘연기와 거울 테이블’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 한국, 일본과 함께 3자 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존재를 지적한다.

홍 작가는 이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주는 일에 실패한 상황에서 소녀상 주변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과 활동가들이 있음을 지적하며, “이들 외에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 줄 또 다른 누가 있을까?” 를 묻고 있다.

저자인 홍숙정 씨는 작가이자 예술가이며, 그녀의 글은 퓨전뉴스, 알자지라 미국, 허핑턴 포스트, 고담이스트 등 여러 곳에서 출판됐다. 현재 그래픽 중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코리아 엑스포제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K0pzeO

THE “COMFORT WOMEN DEAL”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SIX ALTERNATIVE VIEWS

한일 간 “위안부 합의”: 6개의 다른 시각

by SUKJONG HONG

FEBRUARY 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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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외교부는 일본이 1930대 초부터 1945년까지 행한 한국 여성들의 성노예화와 관련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그 합의로써 최근 양국관계를 특징짓는 냉랭한 교착상태가 끝난 것으로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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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매우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한국에 생존해 있는 46명의 피해자 중 누구에게도 이번 합의안의 조건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합의에 이르기 전에 피해자들을 먼저 만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한 생존자 노인이 합의 발표가 난 후 ‘위안부’ 여성들을 방문한 한국의 외교부 차관에게 말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나, 우리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증인이며 증거로 이렇게 살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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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위안부’ 합의안이 생존자들의 요구와 그들의 24년에 걸친 캠페인, 그리고 해외 인권 단체들의 권고를 철저히 무시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한다고 해서 꼭 민족주의자(많은 해외 언론 매체들이 시사한 바와 같이)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가 완벽한 외교적 승리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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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테이블

이번 합의의 배경을 상상할 때 나는 협상 테이블이라는 가장 구체적인 상징으로 시작한다. 많은 논평가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생존자들이 배제된 사실을 비판한다.

협상이란 양측 혹은 다수의 당사자 간에 상호 이로운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에 체결된 협약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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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 테이블

그 협상 테이블은 굴복 테이블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 협약은 일본의 요구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이 해온 주장에 지나치게 편파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협의는 일본 총리에 의해 표명되는 공식 사죄를 포함하지도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주지도 않았다.

대신, 한국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인도적인 제스처로 제공하는 10억 엔을 이용할 재단을 세우기로 동의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후에 아베 총리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10억 엔 지급에 대한 조건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게다가, 그들은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소녀상 이전에 한국 정부가 협조하겠다는 암시를 주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녀상을 세웠던 시민단체들과 생존 피해자들은 이 협의를 반대하며, 이 거래를 맹렬하게 반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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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테이블

이 합의는 생존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과 국회에도 충격이었다. 그것은 이 협의가 비밀 테이블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비밀 테이블에서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역사적 갈등에 시끄러운 논쟁과 공개 토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로 이를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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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 테이블

사실, 이 협의에는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1965년, 일본 육군 중위였고 후에 한국의 군부 독재자가 된,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일본과 국교 정상화 조약에 서명하며 일본의 경제 원조와 일본과의 교역의 길을 개방했다.

1991년 한국 ‘위안부’ 생존자들이 처음 앞에 나와 일본 제국이 조직적으로 군대 성노예를 실시한 것을 밝혔을 때, 일본 정부는 비록 위안부 문제가 정상화 조약에서 논의조차 되지도 않았지만 그러한 주장들은 이미 1965년 조약에서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번 2015년 합의로 한국과 일본은 일본에 대한 미래의 어떤 이의 제기도 막아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라는 말을 다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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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테이블

이것은 우리를 블랙홀 테이블로 이끌어 준다. 이 테이블에 역사적인 진실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적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생존자들의 가장 중요한 요구이며 국제 인권 단체들의 핵심적 권고 사항이다. 생존자들은 일본이 ‘위안부’ 제도를 실시하는 데에 있어 국가적 과오의 규모를 인정하고, 학대와 범죄의 규모를 조사하며 이러한 사실들이 반영되도록 교과 과정을 수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 가장 최근의 이번 ‘사과’는 일본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으며 그러나 단지 ‘군 당국’만이 연루되었음을 암시했고 역사적인 책임 소재와 관련된 모든 다른 요구 사항들은 완전히 무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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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거울 테이블

연기와 거울 테이블에는 한일 간의 화해로 포장된 겉모습이 그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가려주는 전형적 마술 속임수가 있었다. 아무도 소리 내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테이블에 또 한 사람이 앉아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합의를 전적으로 동의한 자가 있다면, 그건 바로 미국으로서, 미국은 급격히 증대하는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 한국, 일본과 함께 3자 동맹을 강화하려 조바심을 내왔다.

이번 합의는 한국과 일본이 다시 한 번 실제로 협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전쟁 범죄 피해자들의 침묵이 또다시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 하에 이를 위한 담보로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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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이 합의안을 지지하는 측은 국가들이 국가 안보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이 실제로 얻은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공식적 미사여구와 현실의 간격은 더욱 더 뚜렷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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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주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 대한민국 학생들과 활동가들이 영하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사관 맞은 편,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소녀상 주변에서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 외에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 줄 또 다른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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