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새해부터 전남도 홈페이지 연재된다.

기사입력 2014.12.29 06:07 조회수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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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민중의 역할 재조명…임진왜란 해석 새 지평

정찬주 작가 “호남인에게 헌정하는 소설로 남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7년을 호남민중의 역할과 함께 재조명하는 대하 역사소설이 전라남도 홈페이지에 연재된다.

 

전남도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후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7년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을 새해 초부터 도 홈페이지에 연재한다고 28일 밝혔다.

 

 

▲ 정찬주 작가

 

이 연재소설은 성철스님, 법정스님, 다산 정약용 등 고승과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생각을 소설로 다루어 큰 명성을 얻은 작가 정찬주 씨(61세)가 집필한다. 새해 1월 5일부터 1년간 52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에 독자들과 만난다.

 

이 소설은 이순신 장군이 1591년부터 전라좌수사로서 임진왜란에 대비하고, 23번의 크고 작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과정, 백의종군 후에는 궤멸된 조선수군을 재건한 일 등을 재조명 한다.

 

그 과정에서 특히, 충무공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호남의 장수와 의병, 승군과 관군, 이름 없는 민중의 역할을 복원함으로써 임진왜란 해석의 새 지평을 연다.

 

전남 보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2001년 화순에 정착한 정찬주 작가는 “이순신은 ‘호남이 없다면 국가는 없소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단언했다.”면서 “이순신의 이 한마디는 임진왜란 역사에 대한 가장 적확하고 명쾌한 평가”라고 지적했다.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민중의 역할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지 않다. 호남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도 역사 뒤편에 묻혀진 느낌이다.”고 집필 배경의 일단을 설명하며 “호남인에게 헌정하는 소설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소설을 보려면 전라남도 홈페이지(http://www.jeonnam.go.kr)에 접속해 → 생명의 땅 전남 → 도정홍보관 → e-book 자료실을 클릭하면 된다.

전라남도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네이버 배너광고(뉴스홈)를 1월 5일부터 2월 4일까지 한 달 동안 설치해 전남도 홈페이지 e-book 자료실에 연결되도록 했다.

 

전남도는 이번 연재를 평가해 각 시군도 지역의 역사자원을 여러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6. 4. 지방선거 과정에서 △도, 시군 홈페이지를 통한 지역 문화예술인의 활동공간 확대 △임진왜란 기간 호남 민중의 역할 재조명 등을 공약한 바 있다.

 

 

<이순신의 7년> 작가의 말

 

호남인에게 헌정하는 소설로 남기를 바라며

내가 임진왜란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4년 전 서울에서 화순 땅으로 낙향하고 난 뒤부터였다.

 

나는 지금 ‘눈앞이 길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산방(山房)을 나서면 임진왜란 때 분연히 일어섰던 호남 민중의 충절과 애환을 처처(處處)에서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귀향은 소설가인 내게 축복과 행운을 가져다준 셈이 됐다.

 

화순만 해도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호남도 우리나라 땅이요, 영남도 우리나라 땅이다(湖南我國之地 嶺右我國之地也)’라며 진주성으로 달려가 순절한 최경회 의병장의 혼백이 있고, 재 하나만 넘어가면 이순신 장군이 누각에 올라 <한산도가>를 읊조리고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임전무퇴의 장계를 쓴 보성군이 있다. 뿐만 아니다.

 

구례에서 곡성, 순천, 낙안, 보성, 장흥, 강진, 완도, 진도, 해남으로 이어지는 남도의 육로와 해로는 건곤일척의 명량대첩을 앞둔 조선수군에게 재기의 생명선이었다.

 

궤멸 직전의 조선수군을 기사회생케 한 데에는 이순신 장군과 호남 민중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이순신은 지인에게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소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단언했다. 이순신의 이 한 마디는 임진왜란 역사를 관통하는 화살처럼 가장 적확하고 명쾌한 평가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호남 민중의 역할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호남 의병장들은 물론이고, 관군과 의병장들에게 목숨을 맡겼던 호남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도 역사 뒤편에 묻히어진 느낌이다.

 

목탁 대신 칼을 들었던 화엄사, 흥국사 승려들로 구성된 의승수군(義僧水軍)의 분투나, 대부분이 호남 출신인 이순신 휘하 장수들의 피 끓는 충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색할 뿐이다.

 

성웅 이순신이라는 눈부신 광휘(光輝)로 말미암아 그들의 진면이 퇴색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신격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호남 민중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말하는 인간 이순신을 그려낼 것이다.

 

임금과 대신들은 부끄럽게도 의주로 도망쳤지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당시의 호남 민중을 복원해 오늘의 호남인 모두에게 헌정하는 소설이 되게 하고 싶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고 했다. 역사정신을 깨우치는 벼락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순신 장군 해전 일람표]

전투시기

충무공 년보

지휘장수

전투결과

조선-(명나라)

여진-왜(일본)

1592.5.7.

옥포

이순신

도오도오 다카도라

왜선 26척 격파

1592.5.7.

합포

이순신 원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5척, 왜군 패주.

1592.5.8.

적진포

이순신 원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11척 격파.

1592.5.29.

사천

이순신 원균

가메이타 고레노리

왜선 13척 격파.

1592.6.2.

당포

이순신 원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21척 격파.

1592.6.5.

당항포

이순신 원균 이억기

왜선 26척 격파.

1592.6.7.

율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구루시마 미찌후사

왜선 7척 격파.

1592.7.8.

견내량

이순신 이억기 원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47척 격파. 12척 나포.

1592.7.11.

안골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구기 요시다까

왜선 42척 격파.

1592.8.29.

장림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왜선 6척 도주.

1592.9.1.

부산 다대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왜선 128척 격파.

1593.2.6 ∼ 3.8.

웅포

이순신 이억기 원균

구마다니

왜군 100명 사살.

1594.3.4.

당항포

이순신

와키사까 야스히로

왜선 31척 격파.

1594.9.29.

장문포

이순신

후꾸하라

왜선 2척 격파.

1594.10.1.

영등포

이순신

시마쯔

왜군 격파.

1594.10.4.

장문포

이순신

후꾸시마

쌍방간 조우 대치

전과 없음.

1597.8.28.

어란진

이순신

도오도오 다까도라

왜선 도주.

1597.9.7.

벽파진

이순신

도오도오 다까도라

왜선 도주.

1597.9.16.

명량

이순신

도오도오 다까도라

왜선 31척 격파.

1598.7.18.

절이도

이순신 진린

왜선 50척 격파.

1598.9.19 ∼11.15.

광양만 예교성

이순신 진린 권율 유정(劉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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